최근 일반인들이 출연한 예능 프로그램들이 큰 화제를 모으고 있다. <환승연애>, <2억9천 : 결혼전쟁>, <나는 SOLO> 등 평범한 사람들의 신선하고 진솔한 모습이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얻으며 화제성과 인기를 모두 잡았다. 신선함에 리얼함, 가성비까지 고루 갖춘 일반인들의 예능 출연! 방송 프로그램은 언제부터 평범한 이들에게 주목하기 시작했을까? 꾸준히 사랑받는 일반인 출연 예능에 대해 팝 칼럼니스트 김태훈 씨와 문화평론가 김헌식 씨가 나눈 이야기를 함께 만나보자.
콘텐츠가 된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 <유퀴즈 온 더 블록>
과거에는 일반인들이 TV에 나오는 일이 흔치 않았다. 1980년대 시청자들이 직접 찍은 홈비디오를 방송국으로 보내 간접 출연하는 것을 시작으로,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깜짝 카메라가 한때 인기였다. 1990년대로 접어들어 공익 예능을 통해 일반인들이 직접 방송에 출연하기 시작했으며, 이후 관찰 예능 등 다양한 포맷의 프로그램에서 일반인들의 모습을 만나볼 수 있었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짝짓기 예능이 대표적인데, 섬이나 외딴집 등 폐쇄적이고 제한적인 공간에 갇힌 일반인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관찰 예능의 방식이었다.
그중에서도 일반인을 주인공으로 한 토크쇼는 꾸준한 사랑을 받는 포맷으로 자리 잡았다. 초창기 거리로 나가 우연히 만난 일반인과의 대화를 통해 현장감과 리얼함을 전달하던 <유퀴즈 온 더 블록>은 다양한 출연자들에게서 나오는 예상치 못한 재미와 감동으로 지금까지도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여기에 예능감 넘치는 일반인 출연자들의 활약으로 색다른 즐거움까지 선사하고 있다.
솔직한 감정에 주목하며 공감을 이끌어낸 <환승연애>
일반인들과 함께하는 포맷이 인기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시청자들은 억지웃음이 아닌 자연스러운 웃음과 새롭고 신선한 콘텐츠를 원하는데, 일반인들이 출연하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바로 그런 시청자들의 니즈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프로그램으로 <환승연애>를 꼽을 수 있다. 이별한 커플들이 모여 지나간 사랑을 되짚고 새로운 사랑을 찾아나가는 연애 리얼리티 <환승연애>는 2021년 시작돼 시즌2까지 방영되며 ‘제1회 청룡 시리즈상’ 예능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하는 등 안팎으로 큰 화제를 모았다. 지금까지의 연애 프로그램들은 출연자가 연애 경험이 없는 것을 강조해 왔지만 <환승연애>에서는 그런 기존의 공식을 완전히 깨버렸다. 특히 이별한 커플을 한 공간에 모아 긴장감을 유하는 등 차별화된 기획으로 평범한 연애 속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을 솔직하고 감각적으로 보여주며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큰 사랑을 받았다.
<환승연애>의 폭발적인 인기는 진정성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연예인들이 나오는 연애 프로그램의 경우 일회성 이벤트라는 느낌과 관계 지속성에 대한 의심으로 신뢰를 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 보니 재미도 떨어지고 프로그램의 진정성을 검증하기 어려운 시청자 입장에서 공감도 쉽지 않다. 반면 일반인이 참여하는 연애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심리 묘사에 중점을 두고 출연자들의 감정 변화에 주목하기 때문에 프로그램에 더 깊이 몰입할 수 있다. 또 같은 문화권일수록 연애에 대한 공감도가 높아지는 경향이 있어 특히 <환승연애>의 경우 아시아, 아랍 등 비영어권 국가에서 남다른 관심을 받았다.
차별화된 포맷으로 K-서바이벌의 새 지평을 연 <2억9천 : 결혼전쟁>
일반인들이 출연해 우승과 상금을 걸고 치열한 경쟁을 펼치는 서바이벌 프로그램도 화제다. 서바이벌은 주로 영미권에서 강세를 보여왔으나, 도덕과 윤리의 틀에 갇혀 리얼리티가 상대적으로 약했던 국내 서바이벌 예능이 OTT 시장의 성장으로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면서 다양한 시도에 나서고 있다.
K-서바이벌로 대표되는 <피지컬 100>은 일반인 출연자들의 도전과 성취에 주목하며 우승에만 주목했던 기존의 서바이벌들과는 차별화된 접근으로 좋은 반응을 얻었다. 실제 예비부부들이 출연해 결혼 자금 2억 9천만 원을 걸고 극한의 서바이벌을 펼친 <2억9천 : 결혼전쟁>의 경우에도 서바이벌과 연애 프로그램을 결합한 새로운 포맷으로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지평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았다.
대세가 된 일반인들의 예능 출연! 앞으로 나아갈 방향은?
카메라와 영상 플랫폼의 발전으로 연예인과 일반인의 경계가 점점 모호해지고, 방송에 출연하기 쉬운 환경이 조성되면서 비교적 진입 장벽이 낮은 예능 프로그램에 일반인의 출연이 크게 늘었다. 신선한 뉴페이스들이 펼치는 솔직담백하고 친근한 모습들부터 예기치 못한 감동과 웃음이 큰 매력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방송에 나온 일반인들이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는 가운데 이러한 트렌드를 예능에 더 잘 녹여내기 위해서는 재능 있는 일반인들이 방송을 통해 그들의 능력을 펼칠 수 있도록 자유로운 연출이 뒷받침돼야 할 것이다. 다만 도덕적, 윤리적 감수성의 잣대가 이전보다 높아진 만큼 일반인 출연자들에게도 사회적 통념에 따른 도덕적 검증이 함께 요구되고 있으며, 홍보를 목적으로 한 일부 출연자들에 대해서도 경계가 필요해 보인다. 그뿐만 아니라 환경과 ESG에 관심이 많은 ‘알파 세대(2010년 이후 출생자)’의 니즈를 반영해 환경이나 기부, 봉사 등 선한 영향력을 전할 수 있는 예능 포맷에 대한 고민 또한 뒤따라야 할 것이다.
카메라의 대중화, 플랫폼의 다양성 그리고 리얼함에 대한 시청자들의 요구가 맞물리며 일반인들의 예능 출연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그에 따른 콘텐츠 제작기업과 크리에이터의 책임감도 중요해지고 있으며, 다양한 세대와 문화권이 함께 공감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만들어지길 기대해 본다.